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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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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23일 설교: 영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 야곱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7.04.25 (16:11)  /  조회 : 4,725
영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 야곱

창세기 27:2-23
2 이삭이 말하였다. "얘야, 보아라, 너의 아버지가 이제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3 그러니 이제, 너는 나를 생각해서, 사냥할 때에 쓰는 기구들, 곧 화살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서, 사냥을 해다가, 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서,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음껏 축복하겠다." 5 이삭이 자기 아들 에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엿들었다. 에서가 무엇인가를 잡아오려고 들로 사냥을 나가자, 6 리브가는 아들 야곱에게 말하였다. "얘야, 나 좀 보자. 너의 아버지가 너의 형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7 사냥을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께 가져 오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잡수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주님 앞에서 너의 형에게 축복하겠다고 하시더라. 8 그러니 얘야, 너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여라. 9 염소가 있는 데로 가서, 어린 것으로 통통한 놈 두 마리만 나에게 끌고 오너라. 너의 아버지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내가 잘 아니까, 아버지가 잡수실 별미를 만들어 줄 터이니, 10 너는 그것을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그것을 잡수시고서, 돌아가시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11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하였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피부가 매끈한 사람인데, 12 아버지께서 만져 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닙니까?" 13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머니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서,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 14 그가 가서, 두 마리를 붙잡아서, 어머니에게 끌고 오니, 그의 어머니가 그것으로 아버지의 입맛에 맞게 별미를 만들었다. 15 그런 다음에 리브가는, 자기가 집에 잘 간직하여 둔 맏아들 에서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꺼내어,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16 리브가는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매끈한 손과 목덜미에 둘러 주고 나서, 17 자기가 마련한 별미와 빵을 아들 야곱에게 들려 주었다.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러자 이삭이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물었다.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제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하여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마음껏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거리를 찾았느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얘야, 내가 너를 좀 만져 볼 수 있게,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인지, 좀 알아보아야겠다." 22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아들을 만져 보고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 23 이삭은, 야곱의 두 손이 저의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나 있으므로, 그가 야곱인 줄을 모르고, 그에게 축복하여 주기로 하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이 죽고 이제 이삭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 이삭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에게도 또한 아들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아들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최대의 불행이었습니다. 이삭은 결혼하고서 20년간이나 아이를 못 낳았습니다. 그러니 그간 얼마나 마음 고생이 깊었겠습니까?  
   이삭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은혜를 주셔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쌍둥이였습니다. 한 번에 하나도 감사한데, 두 아들을 얻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삭과 리브가는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그 아기들이 엄마의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뱃속에서 마구마구 요동을 칩니다. 이 두 아이가 뱃속에서 싸우고 있었던 거죠.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아기들은 서로 자기가 형이 되려고 한 거예요. 먼저 나오면 형이 되고, 동생보다 훨씬 큰 권리를 갖게 되는데, 먼저 나오려고 싸움을 한 것입니다.  
   이 싸움이 범상한 일이 아님을 이 부부는 알고서,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이렇게 싸우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두 민족으로 나뉠 것인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럽니다. 그래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응답대로 나중에 ‘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며 에돔족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다른 종족을 이룬 것이지요. 그리고 ‘야곱’은 맏아들 역할을 하며 유대민족의 족장 계보를 이어갑니다.
   우리는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시고, 사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사람이 없고, 사명 없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명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내 의사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은 토기장이로 비유되는데, 토기장이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금그릇으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은그릇으로, 또 어떤 사람은 질그릇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르게 사용되게 만드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종류의 그릇이 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명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집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그릇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생활하는데 금그릇만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나는 왜 금그릇이 아니냐’라고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그릇이 다 필요하니까요.
   금그릇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을 금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이 되려고 나섰지만, 박근혜 전대통령을 비롯해서 전대통령들을 보면요, 여러분은 그들이 행복해 보입니까? 저는 최고의 십자가라고 생각됩니다. 질그릇이 볼 때, 금그릇이 좋아보여도, 별로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그릇으로 사용해 주심에 감사하고, 그렇게 만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쓰임에 맞게 가치있게 기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임에 맞게 가치있게 사용되는 모든 그릇은 귀한 그릇이 된다고 디모데후서 2:21절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금그릇이 귀한 그릇이 아니에요. 가치있게 사용되는 그릇이 귀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나는 머리가 비상하지 못하느냐고 부모에게 원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나는 이 사람을 만나서 평생 힘들게 살게 하셨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원망, 불평하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어요? 불행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우리를 여러 그릇으로 만들어주시고, 사명을 다 다르게 주셨습니다. 그에 합당하게 살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우리는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동양의 현자인 공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잖아요.  
   순종을 해서, 오늘 필요해서 보내주신 내 존재에 긍지를 갖고, 내 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쓰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그 쓰임으로 부름받은 존재로 가치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살면서 부모를 있는 그대로 존경하고요, 자녀를 사랑하고, 배우자를 최고로 생각하세요. 까다로운 나랑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세요. 그리고 직장을 귀히 여기세요. 가족과 직장 동료들을 많이 칭찬하세요. 그렇게 해서 그들을 살리고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살라고 여러분들을 그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현재 힘든 사람은 하나님에게 기도하세요. 지금은 힘들어도 하나님이 분명히 길을 열어주십니다. 왜냐? 하나님은 우리를 쓰임새가 있는 존재로 세상에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 그릇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며, 가치있게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이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큰 아들이 에서이고, 작은 아들이 야곱인데, 큰 아들은 털옷을 입은 것처럼 온몸이 붉은 털투성이였습니다. 그는 튼튼하고 강하고 힘이 장사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는 사나운 짐승들을 잡는 사냥꾼으로 성장했습니다.  
   반면에 동생 야곱은 털이 없이 맨질맨질 했어요. 별로 남자답게 용맹하지도 않고, 아주 나약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집에서 순한 집짐승이나 길렀습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의존적이었습니다. 혼자서는 뭘 못 해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전형입니다. 그런 그가 놀라운 것은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어요. 자기가 맏아들이 되어, 맏아들의 권리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러나 힘으로 밀렸어요. 그는 장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약하고 소심하고 패배하고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습니다.  
   이 두 아들이 이제 장성해서 맏아들의 축복을 받을 때가 되었어요. 아버지 이삭은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자의 축복을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두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강하고 씩씩한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강해야 살아남고, 강해야 가문을 발전시키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물론 하나님이 큰 아들 에서가 작은 아들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하셨으니, 작은 아들 야곱을 장자로 세워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자신의 뜻대로, 에서를 몰래 불러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맏아들의 축복을 할테니, 짐승을 잡아다가 별미를 만들어 와라. 그것을 먹고 너에게 힘껏 축복해주겠다.”
   성경은 이것을 자기의 육적인 뜻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정을 따라서 혈연관계에서 먼저 태어난 자를 축복하려고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에서가 더 튼튼하고 재능이 있고 용감하고, 그러니까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과는 생각이 달랐으니까요.    
   하나님은 저 상처 많고 부족한 못난이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미 태중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는데요, 그가 아무리 약한 못난이라 하더라도 선택한 사람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믿음으로 화답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크게 사용하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만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거부가 되게 하시고, 유대민족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십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크게 사용하세요.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선택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택받은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우리가 아무리 능력없고 나약하고 못난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크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에서 지금 내가 좀 부족하다고 해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느냐, 여기에 달려있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의지해서 놀라운 은혜를 받고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자기 뜻대로 고집불통처럼 육정과 이성으로 에서에게 맏아들의 축복을 하려고 하자,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의 계획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 대화를 들었을 때,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대담하게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이기로 합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염소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요리를 만들어주고, 그를 변장시킵니다. 털이 많은 에서처럼 새끼염소 가죽으로 목과 손에 두르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음모를 꾸며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여기서 보면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데, 속임수를 썼어요.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이 나빠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인데’ 하며 ‘그러니 죄가 아니다’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그녀는 결국에는 패배하고 맙니다. 야곱이 축복의 기도는 받았지만, 축복을 빼앗긴 에서의 분노에 약하고 마마보이 같던 야곱을 그 거칠고 위험한 광야를 건너 도망자가 되게 합니다. 그 아들을 쫓기듯 보내면서 리브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우리는 선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교회에 헌금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이삭처럼 실수하고 죄를 지은 자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땠을까요? 야곱도 죄인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시나리오에 따라,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형인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는 목소리까지 흉내를 내면서, 자기를 에서라고 거짓말하고, 새끼염소를 갓 산에서 잡아온 짐승이라고 하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았느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바로 짐승을 만나도록 도와주셨다고, 하나님까지 팔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삭, 리브가, 야곱, 이 모두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저는 이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란 존재는 참으로 실수하고 수없이 죄를 짓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 겁니다. 여전히 내 길로 가고,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인입니다. 이런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우리라면 답답해서 못 참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 참아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니까요. 그래서 용서하시고,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저들을 하나님은 감싸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실수하고 죄를 짓는 저에게도 하나님이 은혜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실수와 죄 때문에 저를 내치신다면, 저는 정말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니까요, 여러분, 실수와 죄와 과거의 수치스런 일 때문에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죄 많고 실수 많은 우리에게도 축복을 주시고 사용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변화시키기를 원해요. 실수와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고치고, 새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실수를 용서하시면서 그런 변화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야곱은 부족하고 죄많고, 사기행각도 벌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결국에는 아주 축복받은 사람이 되고요, 아주 변화된 사람이 됩니다. 자기의 잘못을 모두 회개하고, 형과 화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바꿔주시잖아요. 그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영적으로도 새로운 자, 장자, 맏아들이 됩니다. 그는 물질적으로 행복하고, 영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된 거예요.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변화된 것은 그가 언제나 영적인 것에 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늘 영적 가치에 관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단팥죽 사건인데요,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배고프고 지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때 마침 야곱이 단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배고픔에 에서는 아주 조급하게 단팥죽을 달라고 말합니다. 이때 야곱이 형 에서에게, 줄 수 없다며, 먹고 싶다면, 맏아들의 권리를 팔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에서가 그러라고, 그리고는 단팥죽 한 그릇에 맏아들의 권리를 팝니다.  
   그래서 맏아들의 권리를 야곱이 얻는데요, 생각해 보면 무슨 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맏아들의 권리는 아버지가 주는 것인데, 형에게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산 ‘맏아들의 권리’가 성경에서 어떻게 실현되냐면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땅을 받고 재산을 받은 것이 아니에요. 그 가문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해달라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산 맏아들의 권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 영적인 가치를 산 것입니다. 에서는 물질적인 것,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그 영적인 가치를 버렸고, 야곱은 그 영적 가치를 소유하려고 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도자요, 그가 함께하면 복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고, 이런 믿음 속에서 축복을 받는 것이 맏아들의 권리였어요. 지금 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받는 거예요.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에게 달렸다.”는 믿음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이 영적 가치를 붙잡고 살아갈 때, 그는 변화되고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으니, 꿈이 꿔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하나님을 바라보니, 바라보던 하나님의 인격이 닮아집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승리하고 행복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가치를 제1원리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만 붙잡으면 우리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가치있는 인생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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