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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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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30. 설교: 하나님을 만난 야곱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7.05.02 (11:55)  /  조회 : 4,765
하나님을 만난 야곱
창세기 28:10-19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야곱은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임신했을 때, 이삭과 리브가 부부에게 야곱이 맏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동생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장자로 선택하셨던 거죠.
   그러나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에서는 용맹스럽고 강인했는데, 야곱은 나약했고, 그는 의존적이고, 자신감도, 용기도 부족한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자기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에서가 맏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에서에게 맏아들의 축복을 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어머니 리브가가 그 대화를 엿듣고는 야곱이 맏아들의 축복을 받도록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 음모대로 야곱을 변장시켜, 눈이 어두워진 이삭을 속이고, 맏아들의 축복을 받아냅니다. 거짓말로 사기를 친 것이지요. 아마도 그들은 얼싸안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야곱이 이미 축복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땅을 치며 분노하고, 동생을 죽이려고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닙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킵니다. ‘일단 외삼촌 집에 가 있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그는 헐레벌떡 정신없이 홀로 그 마을을 벗어나 달려갑니다. 혹시 에서가 따라올까 봐, 멀리 벗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외삼춘 집을 향해서 사막을 가로질러 걸어갑니다. 외삼촌 집까지는 대략 10일쯤 걸어야 하는데, 그 첫날 그렇게 가던 중, 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몸은 지치고, 배는 고프고, 길 길은 멀고, 마마보이인 자기에게 엄마도 없고, 어떻게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는 몸이 피곤하니, 돌맹이를 베개 삼고 누웠습니다.
   그러나 잠이 올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을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를 장자삼아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었기에,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하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패배자가 되어, 지금 돌베개를 베고 누운 것입니다. 얼마나 낙망했겠어요? 게다가 그는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 된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어요?
   죄책감과 수치감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현실을 보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벨 것이 없어서 돌베개를 벴겠어요? 지금 아무 것도 없는데, 미래는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리고 그 사막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사막에는 밤에 짐승들이 움직이는데, 짐승이 냄새를 맡고 공격할까 두려웠을 것이고요, 또 누군가 사람이 나와서는, 자기를 죽이고, 여기다 그냥 버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힘이 약한 야곱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어려움 속에서 그는 혼자였습니다.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막막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운 밤이었어요. 사막에 가면 불빛이 하나도 없기에 그렇게 별이 많고 쏟아질 듯 아름답다는데,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렸을 거예요.
   야곱은 그러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 보니 사닥다리가 내려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층계라고 되어있는데, 이 층계라는 말의 주석을 보니까 “혹은 사닥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층계 혹은 사닥다리가 내려온 거예요. 그 사닥다리가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이어졌는데,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리고는 그 맨 꼭대기를 보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외롭고, 무섭고, 인생의 미래가 안 보이고, 수치스런 그에게, 하나님이 오신 거예요. 그 절망의 순간에 야곱은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야곱을 부릅니다. “야곱아.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바로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키고 인도하고 살릴 거야.” 그런 거예요. 이 순간 그가 얼마나 안도하며 감격했을까요?
   하나님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두려움 속에 있는 인생에게 찾아오십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뭔가 실패하고 삶이 안 좋아지면, 다 떠나갑니다. 동정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비웃으며 떠나갑니다. 우리가 때때로 사업이 힘들어지고, 문제가 생기고, 육체나 마음에 병이 생겨서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우리는 혼자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요. 그래서 우리 앞의 막힌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가장 쉬운 때가 언제냐고 하면, 내가 참으로 고난받고 곤고할 때입니다. 사람이 잘 나갈 때는요,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에게 감사하세요. 고난이 닥치면 그때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만날 수가 있는 거예요. 이사야 55:6절에는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가 하나님 만날 때이구나 생각하시고요, 그때 마음을 열고,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음성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그 약속 믿고 달려가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곤고할 때,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끊임없는 싸우고, 종종 아버지는 가출을 하고,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들과 모여 술타령 신세타령을 하며 살았습니다. 어린동생들과 끼니 걱정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할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가자며,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렇게 가던 중, 잠들었다 깨어보니, 달려가는 기차에는 아버지와 남동생들뿐,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화가 난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고통 때문에, 어머니를 잃어서 슬프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만 할머니 집에서 사는데, 가난했기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지만, 아버지는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뒷산에 올라가 나무만 해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술로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생각날 때마다, 더욱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했습니다. 그러던 아버지는 어느 날 길에 쓰러지셨는데, 며칠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12살의 어린나이에 고아원을 뛰쳐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전칠기, 금세공, 봉재공장을 다니며 사기도 당하고 학대도 받으며 수없이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위해 참고 견뎠습니다. 돈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달려가 맛있는 것을 사주는 행복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동생들을 위해 일했지만,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동생들은 그런 그의 노고는 알아주지 않은 채, 다 떠나버렸고,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어 택시운전하며 살았는데, 세상과 부모에 대한 증오와 분노만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우울했습니다. 세상이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만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분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찬양을 부르면서, 그는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하는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인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곁에 계셨던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느냐? 내 아들아.” 하나님이 그 찬송을 부르는 중에 만져주셔서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는구나.” 깨닫게 되었고, 그는 그때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힘과 용기를 얻고, 기쁨 가운데 정력적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야곱은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아.” 부르는 소리에 아마 통곡했을 것입니다. 그 어렵고, 힘들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면 하나님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고, 무엇보다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근심, 걱정, 두려움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편에서 초월적인 분이시기도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하나님을 ‘이성의 총합’이라고 했고, 또 어떤 철학자는 ‘절대정신’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초월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존재하시기도 하시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주시고, 따뜻하게 우리를 보듬어주시고,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신 창조자 성부 하나님, 또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이 세 인격이 하나로 통일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신데, 요한복음 11:35절에 보면, 오라비인 나사로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우는 것을 보시고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함께 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우리와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시요, 그렇게 우리와 공감을 나누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시듯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믿는 측면도 있지만, 감성적으로 만나,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공감해 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들이 쌓이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막을 건너가고 있는 것과 같아요. 힘들고 지치고요, 더위와 싸워야 하고, 짐승들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런 사막에서 살아가려면, 물을 밖에서만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낙타처럼 혹은 선인장처럼 자신의 몸  속에 수분을 저장해둬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갈증을 때로는 자기 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외롭고 두렵고 불안한 사막을 걸어가면서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돕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기에 외적인 삶은 척박해도, 내면은 자신이 넘치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물주머니를 가지고 사막을 건너게 됩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웃으면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데요, 천사가 사닥다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천사가 왜 오르락내리락할까요? 천사는 내려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를 보고, 또 그들의 기도를 가지고 올라가서, 하나님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해요. 천사는 중재자예요. 그러니까 야곱 앞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한 것은 그의 상황과 기도를 하나님에게 올렸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예요.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천사들이 그것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 바라보고 나아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를 할 때, 절실함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는데, 절실함이 없이 “이루어주시면 좋고”식이거나, “기도를 해놓고는 잊어버리는 형식적인 기도”는 응답받기 어렵습니다. 생업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절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절실함으로 앞날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청년들이 조금 비아냥거리면서 “왜 우리는 계속 아파야 하나요?”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치에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만 되겠어요? 개인적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꿈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잖아요. 젊은이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그러면 분명히 나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비전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품고 꿈꾸며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 야곱을 만나 하나님이 주신 것은요, 비전을 주신 것이에요. 금방 먹을 것을 주시고, 호위무사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무슨 비전을 주셨느냐면요, 첫 번째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 그리고 세 번째는 네가 다시 따뜻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약속은 비전이에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비전을 주십니다. 비전을 주시고, 비전대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 어떤 난관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도울자를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십니다. 절실함을 가지고 기도해서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영혼의 잘됨,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있고, 불안하고, 화가 많고, 근심 걱정이 많은데, 사람들이 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기도를 안 합니다. 그래서 삶의 질이 형편 없는데도요.
   공자가 20대는 약관, 40대는 불혹, 60대는 이순이라고 했습니다. 이순이란 말이 귀가 순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60대에는 무엇을 듣던 귀가 순해져서 너그러운 마음이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기만히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과제라는 거예요. 실제로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고 다른 사람 말을 안 들으려고 하고요, 분노가 더 많아집니다. 대화가 잘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길, 늙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몸은 아파지죠, 마음에는 분노가 많이 생기죠, 다른 사람은 내 뜻대로 안 되죠. 얼마나 힘들어집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늘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 근심이 많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행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있었지만, 욕심이 많아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평화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녀가 어느 날 평화를 누리고 싶어서, “하나님, 내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진실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데, 갑자기 자기를 옆에서 보듯이 자기의 모습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얼굴은 표독스럽고, 욕심이 가득해 보이고, 잔악함이 보이더라는 거예요. 섬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고 팔짱을 끼고 있더래요. 그래서 그 집사님이 깜짝 놀랐답니다. 그녀는 영적 평화를 위해 기도하다가, 자신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예요. 그때 그의 입에서 이런 탄식이 나오더래요. ’내가 지금까지 망할 짓만 해 왔구나.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하나님의 큰 은혜구나.’ 그래서 그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겸손히 섬기게 하소서. 내 죄를 알고 언제나 찬양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많은데,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하소서.” 그녀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평화를 누렸다고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야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면 이래요.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가 이때까지 믿음생활 했지만, 하나님을 못 만났던 거예요. 그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의 하나님을 만난 거예요. 하나님은 누구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이에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다 내놔야 합니다. 물질적인 문제 다 내놓고, 정신적인 문제 다 내놓으시고, 내 죄를 다 내놓고 진실하고 절실하게 기도할 때, 우리는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세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인생이 행복한 인생, 평화가 넘치는 인생, 은혜에 감격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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