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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주일의 설교잠실희년교회에 오신걸 환경합니다.

5. 28일 설교: 풍성한 사랑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7.06.06 (13:01)  /  조회 : 5,206
풍성한 사랑

사도행전 9:1~9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사랑을 모르고 산다면
   옛날 비행기가 없던 시절, 유럽에 사는 한 남자가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드디어 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모아졌습니다. 그는 순항함 승선권을 샀습니다. 당시 배로 유럽에서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가려면 2~3주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행 가방을 사서 치즈와 비스킷으로 가득 채웠고, 그가 가진 돈은 이제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배에 올라 여행을 시작하는데, 모든 승객은 크고 화려한 식당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그 남자는 혼자만 한쪽 구석으로 가서 자신이 싸온 치즈와 비스킷을 먹었습니다. 그 시간 식당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었기에, 그는 부러워만 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식당 안에서 배불리 먹는 사람들을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 샌가 잠은 달아나 버렸습니다.
   거의 미국에 도달하여 이제 항해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식사시간마다 거기에서 치즈와 비스킷을 드시던데, 왜 식당에서 우리랑 같이 드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승선권도 겨우 샀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을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싸게 먹을 수 있도록 비스킷과 치즈를 사온 것입니다.” 그러자 상대편이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승선권에 음식 값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음식 값은 이미 다 지불되었어요. 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맛있게 드시기만 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는 거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서, 아주 쇼킹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형편없이 살았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풍성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왜 나에게는 사랑이 없지’ 하면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 내 영혼이 사랑을 먹지 못해 파리해진 채로, 가슴이 시리고, 늘 분노를 담고 살았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태초에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은 풍성하게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가운데서 사랑을 누리며,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어진 그 맛있는 인생을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은 살기를 띠며 살아
   오늘 본문에는 ‘사울’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고서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개명하게 되고, 사도로 사명을 감당하며 ‘사도 바울’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변화되기 전에, 이 사울은 굉장히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어기는 잘못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응징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들을 잡아서 감옥에 넣고, 처형당하게 하는 일을 하고 다녔습니다.
   사도행전 8:3절에 보면 이럽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날뛰었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뤼마이노마이’인데요, 포도원에 멧돼지가 뛰어들어 마구 짓밟아 온통 쑥대밭을 만드는 형국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교회를 말살하려고 쑥대밭을 만든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그는 예루살렘에서 2백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기독교인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요, 다마스쿠스까지 쫓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재판을 거쳐 죽이려고 한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안 지키고 하나님께 불경을 저지르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의 행동은 자기 신념의 길이요, 자기 정의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지금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분노로 이글이글 타 올랐고, 증오가 가득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살기를 띠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살기를 띠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살기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기를 느끼면, 숨이 가빠지고, 참을 수가 없고,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렇잖아요. 제어되지 않는 독살스런 기운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이 들어오면, 살기가 스르르 사라지고, 숨이 잔잔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며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집니다. 편안해져요.

자기에게 이미 주어져있는 사랑을 깨달아
   그러나 지금 사울은 살기를 띠고, 분노하며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의 길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한줄기 빛이 쏟아지더니 그 빛이 사울을 휘감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울에게 빛으로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태양빛보다 강한 빛이 사울에게 비췄습니다. 처음보는 빛을 보면서 사울은 깜짝 놀라고 있는데, 그때에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사울아, 사울아.” 그 부르는 소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여기서 보면, 이름을 한번 부른 것이 아니라 두 번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을 두 번 부른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인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지금 여기서도 “사울아, 사울아” 예수님이 두 번 부릅니다.
   이런 놀라운 광경과 사랑이 듬뿍 담긴 음성에, 그의 살기는 녹아버렸습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럽니다. 이 말씀에는요,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그 사랑을 모르고 나를 핍박하는구나. 내가 바로 네가 핍박하는 그 예수다. 이런 거예요.
   사울은 여기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는 꺼꾸러졌습니다. 살기등등하고 가슴에 분노를 가지고 살았던 그 모습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는 아마도 흐느껴 울었을 것입니다. 사랑 받지 못하던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면, 흐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무엇이기에 저에게 이렇게 사랑을 주십니까?” 너무나 감사해서 울면서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때부터 그는 완전히 변화됩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만하던 그가 겸손해지고, 능력이 없던 그가 능력이 생기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던 그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고,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변화된 것은 그의 가슴이 이제는 분노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유로워지고, 기꺼이 참을 수 있었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무엇이 그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습니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으니까, 그는 완전히 변화된 거예요.
   나중에 그는 에베소서 1장에서 고백해요, “하나님은 이미 사랑으로 나를 선택하고, 사랑을 주시기로 예정하셨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몰랐던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잔치를 모르고, 배 한쪽으로 가서,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며, 맛없는 비스킷이나 먹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영혼이 행복해진 거예요, 그러니 변화되었고요. 그 사랑을 이제 깨달은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행복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지친 가슴이 쉬고, 우리의 매마른 영혼은 만족합니다. 사람이 돈으로 그 영혼의 만족을 살 수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인 사울왕이 있잖아요. 어느 날 마음의 근심이 생겨서, 정신이 이상해지고, 참으로 괴로워합니다. 가질 것 다 가진 왕인데 그래요. 그래서 그 왕의 영혼의 평화를 위해 다윗으로 하여금 수금을 연주하게 합니다. 그 평안한 음악으로 잠시는 평안했겠지만,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해서 그가 평화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더욱 성질이 더러워지고 괴팍해지고, 다른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파스칼이라는 철학자가 있잖아요.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공간이 있다. 그곳은 하나님만이 채워줄 수가 있다.” 우리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 곳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면, 따뜻해져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움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또 용기가 생겨요. 그런데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 마음을 채워줄 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해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시골 합판 공장이었어요, 하루 3교대 근무를 하며 산업체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졸업하자마자, 열아홉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방을 얻을 돈이 없어, 난방도 안 되는 방을 얻어 살았습니다. 직장으로 여러 공장을 거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봉제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려가면서 지출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카드빚이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직장을 한 곳에서 진득하게 다니지 못하고, 툭하면 그만뒀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그녀는 아들을 유아원에 맡기고, 다시 택배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거기서 기사들에게 배송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일을 매끄럽게 못한다고 택배기사들이 막말을 해댔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일하며 벌어도, 빚을 제대로 갚지 못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실직한 기간이 많은 남편과 자주 싸웠습니다.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었습니다. 미래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매일 한숨이요, 사는 재미는 없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구역예배를 드리고 있던 전도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금방 삶의 환경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직장을 그만두고, 여전히 신용불량자로 파산 신청할 처지에 있고, 여전히 일은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는데, 하루는 ‘하나님, 나 정말 힘들어요.’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걱정하지 말고, 내 품에서 편안히 살아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 길에 함께 가잖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더래요. 그러면서 되돌아  보니, 생면부지였던 성도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고, 문제가 해결되도록 정성을 다해 기도해주는 모습이 떠오르더래요. 그러면서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더랍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을 주십니까?” 그날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한 없이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을 만져줬습니다. 마음은 점점 평안해지고, 점점 기뻐졌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해주신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중에 새로운 일자리가 두 군데에서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화장품 가게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유 배달이었습니다. 화장품 가게 일은 수입이 두 배나 많은데, 주일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형편으로 볼 때, 두 배나 되는 수입이 되는 곳을 다녀야 하지만, 그녀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야지’ 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유 배달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교회를 다니며 주일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느껴지면서 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 되니까, 일이 주어진 것도 감사했고,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부부관계도 좋아졌고, 남편도 신앙을 갖고는 더욱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상황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제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마음 한편에는 영혼의 만족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일이든 용기가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세요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사랑을 주시기 위해 부르셨어요. 우리가 오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불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예배에 드릴 때, 찬송도 힘차게 부르며, 마음을 열고 말씀에 아멘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별 볼 일없는 나를, 이기적인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구나. 내가 죄와 허물이 많은데도, 감싸주시고 위해 주시는구나.’ 그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지친 영혼이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영혼의 쉼은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우리의 인생 짐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마음은 또 얼마나 지쳐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예수님에게 기도로 다 내려놓고,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쉼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사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는, 이전까지 생각했던 신념을 버리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8절에서 사울은 이 사랑을 받고는 이전 것은 다 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오물이 아니라 “배설물”이라고 번역하는데,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진리를 발견했으면 그럽니까?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강했던 그 사람이, 겸손하고, 참을성 많고, 이기지 않고 지면서, 사랑을 전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거예요.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복음을 들고 이곳저곳을 갑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이 온전히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여러분, 우리 자신이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진정으로 행하며, 가슴 따뜻하게 살면, 얼마나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불러내신 거예요. 그런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아무 계산없이 사랑하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가운데 “어거스터스(Augustus)”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였어요. 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꿈에 산모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으니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살게 해 주십시오.”
   그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과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만 받고 베풀지 못하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고 교만하게도 되었습니다. 어거스터스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제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또 꿈에 나타나서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어거스터스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해 주고,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해 주고,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소원이 이뤄져서, 어거스터스는 이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터스는 커다란 나무에 많은 새들이 깃들어 쉼을 얻듯이, 다른 사람에게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하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인생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교회에서 아무 계산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되받을 마음 다 버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훈련을 해야 하는데, 기도하실 때마다, 되받고 싶은 마음 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삶에서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얻으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삶의 길이 막힐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영혼이 채워지고, 내가 또 사랑해야 합니다. 사울은 그 사랑은 모르고, 율법만 지키려고 하니, 사람을 죽이는 반율법적인 사람으로 살았고, 살기를 띠고 산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할 때, 우리는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할 때, 내가 행하는 정의는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정의가 됩니다. 내가 사랑 가운데 거할 때, 나의 명예와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보여주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따뜻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맘껏 하나님의 사랑을 받읍시다. 또 맘껏 사랑합시다. 그런 풍성한 사랑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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