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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주일의 설교잠실희년교회에 오신걸 환경합니다.

6. 18일 설교: 야곱의 연단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7.06.29 (17:04)  /  조회 : 5,448
야곱의 연단

창세기 29:15-28
15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 16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맏딸의 이름은 레아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라헬이다. 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럽고,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 18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가 칠 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 드릴 터이니, 그 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라반이 말하였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는 것보다, 너에게 짝지어 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21 칠 년이 지난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 22 라반이 그 고장 사람들을 다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23 밤이 되었을 때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데려다가 신방으로 들여보냈는데,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레아와 동침하였다. 24 라반은 여종 실바를 자기 딸 레아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25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 보니, 레아가 아닌가!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 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26 라반이 대답하였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27 그러니 이레 동안 초례 기간을 채우게. 그런 다음에 작은 아이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에 자네는 또 칠 년 동안 내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네." 28 야곱은 그렇게 하였다. 그가 레아와 이레 동안 지내고 나니, 라반은 자기 딸 라헬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관계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야곱
   야곱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챕니다. 그러자 형 에서가 그를 죽이겠다고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되자 어머니 리브가는 다급하게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시킵니다.
   야곱은 사기를 쳐서 큰 축복을 받으려고 하다가, 다 잃어버리고, 게다가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야곱은 참으로 나약하고, 결단력도 없고, 마마보이처럼 무능력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라반의 집에 가기 위해 광야에 들어섰을 때는, 모든 것이 참으로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길은 처음 가는 광야길이고, 지도도 없이 사막을 지나, 수 백 킬로 떨어진 외삼촌을 찾아가는 길이잖아요. 그렇게 막막한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지만, 막막하고 나약한 그를 만나주시고, 도와주시고, 그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가 광야로 도망 나와 허겁지검 걷다가, 광야에서 첫날 밤을 맞이합니다. 그가 돌을 하나 주워다가 베개를 삼고, 첫말 밤을 보내는데, 그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는 그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면서 축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너를 다시 따뜻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 네가 누운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또 광야가 무섭고 위험한 곳이지만, 내가 너를 지켜주겠으니,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는 일어나서, 자기가 베었던 돌베개를 세워놓고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부터 그는 힘차게 저 위험한 광야를 건너 자신있게 담대하게 외삼촌 집을 향해 갑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외삼촌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사막지대에서 외삼촌을 찾기란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끄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여러분들도 막막함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여 야곱이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 집에 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사기충천해서 혼자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제는 부딪치며 밀고 밀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하며 벌어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이렇게 부딪치며 살아가는 얘기가 오늘 본문인데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먼저 외삼촌 라반과 함께 앉아서, 품삯을 어떻게 할지부터 결정합니다. 15절에 보면,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 외삼촌과 협상을 해요.
   외삼촌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의 이름은 레아요, 작은 딸의 이름은 라헬이었습니다. 그 두 딸 중에서 야곱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은 딸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야곱은 그 라헬과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삼촌의 협상제안을 듣고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제가 칠 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 드릴 터이니, 그 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 그랬어요. 18절에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지참금으로 7년간 머슴으로 일하겠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중동지역에 지참금 관습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장인에게 지참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 지참금은 돈이 아닌 노력으로 대신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요,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는 지참금 대신 7년간 머슴이 되겠다고 제안을 했고, 라반은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야곱은 7년이나 머슴이 되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주 과도하게 긴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에 따르면, 대략 1년을 머슴노릇 하면 됐어요. 신명기에 보면 결혼 지참금으로 비싸야 은 50세겔이었습니다(신22:29). 은 50세겔은요, 이스라엘 화폐단위인데요, 이것을 그리스화폐단위로 환산하면 200드라크마입니다. 1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200드라크마는 노동자가 200일을 노동해서 버는 품삯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쉬는 것을 전제해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노동하면 당시의 지참금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야곱은 7배가 넘는 액수를 지불한 것입니다. 굉장히 과도한 것이지요.

가족을 존중하고 특별히 자신을 존중하라
   왜 이렇게 7배나 과도하게 지참금을 지불했을까요? 그것은 라헬의 가치를 그만큼 높이 산 것입니다. 라헬을 그렇게 가치가 큰 존재로 본 거예요. 라헬은 자기가 7년이나 일해서 얻어야 할 자치있는 존재란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라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너무 기뻐했을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가?’ 그 장래의 남편이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가 바라보면서 행복했을 것입니다.
   제가 어떤 부부 모임에 갔는데요, 어떤 한 남편이 자기의 아내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나에게 시집오기에는 아까운 여자였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때 제가 그 아내분을 슬쩍 쳐다보니까,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행복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소중한 존재로 여겨주니,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제가 어떤 심리학 책을 읽어보니까, 사람은 가치를 인정해주면, 그만한 가치의 존재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더 능력있고 가치있고 품위있는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부부가 서로 소중히 여기시고, 대접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자녀들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모두가 존중받고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 자신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존중해 주겠어요?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내 자의식에 따라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 고유의 분위기가 여유롭고 당당하고 멋있어요. 우리는 ‘나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나만의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동물학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물학교에서 타조는 날기에서 10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너는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 못하느냐’고 꾸중을 하고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는 형편없는 점수를 줬어요. 그 선생님은 독수리에게는 ‘날개짓이 너무나 위협적’이라면서 70점을 줬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각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몇 가지 기준에 따라 평가에만 열을 올립니다. 그 기준 밖에 있는 존재는 평가절하 합니다. 그러나 그 평가기준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며 가슴에 기쁨을 안고 살기도 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기도 하고, 공감능력이 좋은 특성이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자기 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어요. 나하고 똑같은 사람은 없고, 그렇기에 남들과 비교해서 평가할 수 없어요. 나는 아주 고유한 나만의 존재입니다. 나만의 것을 자신이 인정하고, 그 나만의 것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자기를 최고의 존재로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질 좋은 시간을 살았다
   야곱은 라헬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간 머슴으로 살았는데, 그 7년이 며칠같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너무 행복하게 시간이 흘러가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요, 야곱은 외로운 타향살이요, 고된 종살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7년이 며칠같이 지나갔다는 거예요.
   그리스어에서 시간이란 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1초1초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카이로스란 시간은 자기 주관적인 시간,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인데요,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그 시간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고요, 행복한 사람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왜 그러냐? 아주 좋은 질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크로노스의 시간, 행복한 시간, 꿀맛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거예요. 몸은 고된 종살이로 살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질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라헬을 사랑했고, 자기 일을 사랑했고, 그 시간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머슴살이지만 그는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7년이 수일같이 느껴졌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질 좋은 시간을 살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사랑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하고, 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어떤 거리에 흑인 청소부가 있었는데요, 콧노래를 부르며 낙엽을 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어떤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어이, 젊은이, 청소하는 것이, 뭐 그렇게 좋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면서 청소하는가?” 그랬더니 이 흑인 젊은이가 말하길, “제가 쫙 청소를 하면, 사람들이 기분 좋게 이 길을 걷잖아요. 제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데, 제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합니까? 저는 행복하고, 이 일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가 그 길을 청소하며 인상 찌푸리고,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느냐’ 한탄한다면, 그의 시간은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질 나쁜 시간을 삽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교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할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은요, 내가 주는 것이고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에요. 야곱도 그렇게 상대방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질이 좋은 시간을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을 즐겁게 할까? 그러면 행복한 거예요.
   야곱은 그렇게 살았는데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야곱을 ‘바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재산도 아닌데, 자기 것처럼 열심히 늘리고, 양들이 다칠까봐 애지중지 하고, 머슴인 주제에 주인을 자기 대하듯 사랑하고, 그러니까 희생하는 사랑을 한 것에 대해서요, “참 바보 같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요, 희생없이, 자기 것 잘 계산하면서,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속성이란 무조건 주는 것이고, 바보같이 자기 것 생각 않고 퍼주는 것이잖아요. 진정한 사랑은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는 거예요.
   저는 계산없이 사랑하는 자가 승리자라고 봅니다. 왜요? 질 좋은 시간을 사니까요. 그렇지 않고 사랑받으려고 하면, 질 나쁜 시간을 삽니다. 왜냐?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어요? 그거 기다린다면, 허탈해지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대가나 많이 주면 사랑해주겠지요? 그런데 그게 사랑인가요? 나중에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면, 사랑 근처도 가기 어렵지만, 내가 사랑하면 나는 이미 사랑의 복판에 서는 거예요. 사랑의 복판에 서야 행복합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하며 사셔서 행복하고 질 좋은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 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야곱은 7년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제 그 7년이 지나갔습니다. 21절에 보면, 라반에게 야곱이 말했습니다.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라반이 결혼식을 치러줍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이 결혼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옆에 누워있는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던 것입니다. 신방에 라헬을 보내야 하는데, 레아를 보냈어요. 라반이 사기친 것이지요.  
   지난밤에 레아는 라헬처럼 옷을 입고 변장해서는 라헬의 목소리를 흉내 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7년 전에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아낼 때, 사기 쳤던 방법 그대로였습니다. 그때 야곱도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에서의 옷을 훔쳐 입고, 에서처럼 꾸몄잖아요. 그런 야곱이 똑같은 방법으로 당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야곱은 크게 당황해서는 항의했습니다. 25절에 보면, 이럽니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 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그때 그는 억울하고 분노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죽이고 싶었을지 몰라요. 사기를 당했으니까요. 그렇게 하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자기가 사기를 쳤던 생각은 별로 안 할 거예요. 사람이란 게, 누구든지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잖아요.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반대로 자기가 상처를 받을 때의 상황은 모든 것을 또렷하게 다 기억하잖아요. 그게 사람인 것이지요. 이게 인간의 기억이에요. 내 기억을 너무 믿지 마세요. 내 기억 믿다가는 분노만 생깁니다. 야곱도 처음에는 그렇게 분노했을 거예요.
   야곱이 그렇게 분노하며 항의하자, 라반이 26절에서 대답합니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이 대답은 야곱의 전과를 빗대서 한 말입니다. 동생인 야곱이 형보다 우위에 서려고 했잖아요. 라반은 조롱하듯 ‘너희 집안은 위계질서 없이 그렇게 막 되어 먹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집안은 전통과 질서가 있어’ 하며 아픈 곳을 건든 것입니다. 야곱의 죄를 상기시킨 거예요. 그러면서 라반은 야곱을 7년 더 부려먹으려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갈라디아서 6;7절 말씀‘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야곱은 자신이 한대로 똑같이 당했어요. 그런데 야곱이 참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은, 그가 사기를 당하고서는, 옛날에 자기가 사기를 친 것을 회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발전하는 인물인 겁니다. 야곱은 여기서 회개를 했습니다.
   물론 성경 분문에서는 야곱이 회개했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문맥을 보면, 그는 다시 7년을 일하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다시 7년 동안 정성을 다해서 라반의 재산을 늘립니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고는, 이렇게 정성을 다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사기 당한 것만 생각한다면, 그는 7년간 다시 머슴이 되지도 않겠지만, 다시 7년을 일한다고 해도, 부실하게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을 거예요. 그런데 그는 성실하게 정성을 다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는 ‘억울하다, 분하다. 하나님은 너무 하시다’라고 말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발견하고, 자기 잘못을 온전히 회개하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구나’ 고백했을 것입니다. 회개할 때, 변화가 시작되고 새로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시작점이에요.
   여기서 그의 결혼식 신부교체 시련사건은 그에게 고마운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게 한 사건이니까요.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또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서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은 연단이고 단련의 과정이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도의 과정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선한 것, 더 좋은 것을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요, 오늘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 용기를 잃지 마세요.  상처받아 고난 과정에 있다면, 자기도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깨달아서, 깊은 영성을 소유하게 하시려는 겁니다. 사업에서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감당하게하기 위해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질병이 다가왔다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라는 신호입니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어요. 쓸데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참으로 힘들고 아프지만, 고난을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면, 버릴 것이 없는 긍정적인 것입니다. 이때 기도하면서 맞닥뜨려서 나아간다면, 그 고난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결과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기꾼이었던 그가 믿음의 영성 깊은 조상이 되었고요, 머슴이었던 그가 엄청난 재산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고요, 그의 아들 12명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가 되는 복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세요. 인생의 여정 가운데는 고난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을 기도하면서 잘 지나고 연단을 하면, 영성이 깊어지고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고난을 긍정적으로 보시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맞닥뜨려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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