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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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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자본주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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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4.29 (15:20)  /  조회 : 1,321

 

기독교와 자본주의①

―복음은 화폐로 성육신하였는가?―

 

1996년 11월 3일(오후예배)

(신 32,15 ; 마 23,16-22)

 

 

1.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는가?

화폐(자본)로 성육신한 복음=물신숭배주의(Fetishism)

2.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친화적 관계

3.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타협/ 자본주의 하의 기독교의 변용

4. 현대자본주의 하의 기독교

 

 

 

 

 

1. 화폐(자본)로 성육신 한 복음=자본복음주의

 

자본주의란, 상품을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회체제이다. 한편 상품이란 ‘판매자’와 ‘구매자’가 존재하여 매매가 이루어지는 특수한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물건이다(페티시즘Fetishism의 탄생=신적 존재가 된 상품). 또한 여기서 말하는 ‘특수한 인간관계’는 비공동체적이며 비권력적인 인간관계를 말한다. 따라서 ‘상품관계’는 란 ‘판매자’와 ‘구매자’가 대가지불을 통하여 상품을 양도하는 하나의 교환관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단순한 교환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상품생산을 위한 무수한 자본의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 자본은 이미 기존의 인간관계를 압도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림 1>상품경제적(자본주의적) 관계와

공동체적 관계/권력적 관계

 

권력적 관계

 

공동체적 관계

 

상품경제적 관계

(자본주의 사회)

 

 

 

 

 

 

 

 

 

*지배복종의 관계

(태어날 때부터)

어기면 처벌받음

*‘형식’없는 계급관계

 

*무상의 상호관계

*항구적 관계임

 

*유상의 상호관계(교환관계)

*일시적인 관계(교환의 조건이 성립될 때만 이루어지는 관계)=장기적 고용관계조차도 실은 일시적 고용관계의 갱신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복종관계는 없다(명목적인 자유, 평등)=쌍무적 계약관계(즉 고용주가 피고용자를 해고하는 것도 자유다)는 형식에 지나지 않다.

“직업종사자가 계약조건이 열악하다고 일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가?”

*‘자유․평등’의 형식을 취하는 계급관계

(가짜 법적 관계)

 

 

 

*최후의 공동체적 관계는 소가족이다=역할분담은 이루어지나, 상품을 교환하는 관계는 아니기 때문.

 

 

*자본주의사회는 상품경제적 자유․평등의 형식을 취하는 계급지배가 이루어짐

 

 

 

2.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친화관계

 

 

<그림 2 > 각 종파의 구원론과 실천태도

(기독교와 자본주의, 친화성과 그 한계)

참고 : ‘⇔’은 쌍방진행, ‘⇒’은 일방진행

 

 

<그림 2-1> 중세카톨릭교회

 

세속외적인 실천(수도승, 수도원)

 

하나님

(구원)

성직자(교회의 계층화를 통한 신의 대리자)

 

참회(고해성사)를 통하여

교회의 권위에 의해 용서받음

󰠐 󰠐 󰠐

󰠌󰠏󰠏󰠏󰠏󰠏(A)󰠏󰠏󰠏󰠏󰠏󰠏󰠏󰠏󰠏󰠏󰠏󰠏󰠏󰠏󰠏󰠏󰠏󰠏󰠏󰠏󰠏󰠏(B)󰠏󰠏󰠏󰠏󰠏󰠏󰠏󰠏󰠏󰠏󰠏󰠏󰠏󰠏󰠏󰠏󰠏󰠏󰠏󰠏󰠏󰠏󰠎

*(A)과정과 (B)과정은 단절되어 있다.

 

 

 

<그림 2-2> 루터파

 

 

하나님

(구원)

 

 

의인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심)

 

 

공적주의와 실천지향론을 회피함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

 

참회(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용서받음

 

<그림 2-3>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캘비니즘)

 

하나님

(구원)

 

 

불안

 

구원의 확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자기성찰 : 세속내적 금욕추구)

 

실천

󰠐 󰠐 󰠐

󰠌󰠏󰠏󰠏󰠏󰠏(A)󰠏󰠏󰠏󰠏󰠏󰠏󰠏󰠏󰠏󰠏󰠏󰠏󰠏󰠏󰠏󰠏󰠏󰠏󰠏󰠏󰠏󰠏(B)󰠏󰠏󰠏󰠏󰠏󰠏󰠏󰠏󰠏󰠏󰠏󰠏󰠏󰠏󰠏󰠏󰠏󰠏󰠏󰠏󰠏󰠏󰠎

*(A)과정과 (B)과정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A)과정은 (B)과정을 낳고, 다시 (B)과정은 (A)과정으로 복귀한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1905)==

 

개신교도들은 세속내적 금욕을 추구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선하신 뜻(예:이웃사랑)을 실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합리적 경영기술의 발전(주먹구구식의 비용계산 등의 전통적 경영기법을 극복하게 된다), 생산기술의 발전(보다 양질의 물건을 공급하여 이웃에게 좋은 혜택을 누리게 한다)을 낳고 결과적으로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던 이윤이 자연스레 쌓이게 된다(17세기 경의 서구유럽).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3. 자본주의 하의 기독교의 변용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윤추구행위는 부차적인 것에 주된 것으로 변화하고 이후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는 무관한 홀로서기가 시작된다(자본주의시대의 본격적 전개, 19세기 이후). 이로써 윤리와 결별한 자본주의의 정신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발전은 계속되고 결국 오늘날 인류는 자본주의라는 우리에 갇혀서 ‘정신없는 전문인, 심정없는 향락인’으로 전락한다.

4. 현대자본주의 하의 기독교

 

1)자본주의에 종속된 기독교로 남아있을 것인가?

물신주의 시대의 대응방식 은 크게 두가지도 나뉜다

①적극적 대응방식=물신주의 시대와 완전히 일치하려는 대응방식

: 자본주의에 백기를 내걸고 철저히 동화됨(종속적 적응)

②소극적 대응방식=물신주의를 가능한 한 외면하려는 대응방식

: “물질은 천하고 신앙은 거룩한 것”(추상적 도덕론)이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물질적 필요에서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

(이중성 심화)

 

 

<그림 2-4> 오늘날의 교회

 

물신주의

시대의

물질적 축복

(구원)

 

 

불안

 

 

하나님·교회가

수단으로 전락

 

축복을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

(실천은 이미 기독교적 성격을 상실함)

󰠐 󰠐 󰠐

󰠌󰠏󰠏󰠏󰠏(A)󰠏󰠏󰠏󰠏󰠏󰠏󰠏󰠏󰠏󰠏󰠏󰠏󰠏󰠏󰠏󰠏󰠏󰠏󰠏(B)󰠏󰠏󰠏󰠏󰠏󰠏󰠏󰠏󰠏󰠏󰠏󰠏󰠏󰠏󰠏󰠏󰠏󰠏󰠏󰠏󰠏󰠏󰠎

*여기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무소부재의 전지전능한 분으로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개념의 구원을 얻기 위한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즉 B과정은 A과정을 위한 전제에 불과하다)

 

 

2)자본주의 하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비젼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 공동체적 관계의 재현(혹은 확산)을 통하여

이중성을 극복하고 시대를 외면하거나 또는 시대의 흐름에 철저히

동화되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키려는 일은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시대의 흐름에 대한 외로운 투쟁이 아닌 공동의 대처능력을 키우는 공동체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으로 복귀할 것을 지향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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