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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주일의 설교잠실희년교회에 오신걸 환경합니다.

5.21일 설교: 가시를 주신 은혜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7.05.23 (15:11)  /  조회 : 5,408
가시를 주신 은혜

고린도후서 12:6-10(새번역)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가시도 있어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인데요,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수준이 높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약점을 잘 다루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9:12절에 보면, 사람들이 바울이 땀을 닦았던 손수건이나 착용했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갔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었던 거죠.  
   게다가 오늘 본문 바로 이전 부분인 고린도후서 12:1-5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여 하늘나라를 구경시켜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 기초해서 하늘을 셋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는데, 첫째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첫째 하늘 위에는 물이 있는 궁창이 있다고 창세기에서 말하는데, 이 궁창이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에 천사들이 사는 셋째 하늘이 있는데, 바로 이 셋째 하늘을 하나님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인 12장2절에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여기서 ‘그는’ 사도 바울 자신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 때에 자기는 영육이 분리되고, 영이 하늘로 올라가 천사들이 사는 셋째 하늘을 구경하고,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체험을 하고서, 그는 강한 믿음을 소유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자신의 상황을 바울은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약함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도 힘들어할 환경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를 늘 찌르는 가시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늘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능력 있고 믿음 좋은 그에게,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굉장히 행복해 보이고, 능력이 있는 것 같고, 가진 것 다 가진 것 같아 보이고, 강한 믿음을 소유한 것 같은 사람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다 아픔을 가지고 삽니다. 자기만의 가시나, 핸디캡이나, 약점 때문에 괴로워해요. 그러니까 너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부러워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시가 크게 보이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
   사도 바울이 가진 그 ‘몸의 가시’가 무엇인지를, 그 자신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는데, 그것은 차마 창피해서 말 못하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것이 간질병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갈라디아교회에서 설교할 때, 간질발작 증세가 나타났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육체의 가시가 간질병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참으로 인생에서 큰 가시입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늘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약이 발전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느낄 때, 얼마나 큰 핸디캡이겠어요? 간질 발작이 나타나지 않을까, 한 시도 마음 편하지 않은 근심거리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이 많고, 좋은데, 이것 때문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이 눈에 보이기보다는, 이것만 크게 보였을 것이고, 이것을 생각하면, 그는 행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이것을 제발 없애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못살겠어요.’ 그러니까 그는 가시 때문에 힘들어 하고 불행해 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큰 문제로 여겼는지, 그것을 위해서 세 번이나 기도를 했다고 본문에서 말합니다. 세 번을 기도했다고 하니까, 겨우 세 번이 뭐가 많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도의 횟수를 지칭해서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많이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세 번 이나 간청했다”고 하잖아요. “세 번이나” 이것은 기도하며 매달렸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은혜를 많이 받은 그에게도 이런 가시가 있었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았고, 그래서 평생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가시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약한 점이나 핸디캡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면, 가시를 자기의 약점이라고 표현하며, 가시와 약점을 동일시합니다. 그러니까, 약점이 나를 아프게 하고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가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육체에서 떠나지 않는 몸의 가시, 즉 평생을 두고 괴롭히는 질병이나 장애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마음 속에 가시를 갖고 있는데, 자존감이 약해서, 늘 자기를 질책하며 마음의 고통을 달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근심, 걱정을 달고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성격이 늘 걱정하는 성격이에요. 그러니 하루인들 편안하겠어요? 또 어떤 사람은 질투하는 마음이 강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전철에 앉아 있는데, 정류장에서 전철이 서고, 멋진 사람이 들어오면, 그때도 그 모르는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긴답니다. 그래서 전철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으면 한 답니다. 이것은 마음의 가시입니다. 그것 때문에 참으로 아프게 삽니다.
   그러면 내 안에만 가시가 있느냐? 내 밖에도 있습니다. 직장에는 자기를 찌르는 가시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 상사나 동료만 없으면 내가 살 것 같은데...’ 또 교회 안에서도 열심히 믿음 생활하는데 가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가시만 없으면 교회에 가서 행복하고 신앙생활을 더 잘 하겠는데...’ 하는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가시를 가지고 괴롭힘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먼저 주신 것에 감사하라
   사도 바울도 그 가시 때문에 힘이 드니까, 간절하게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나님, 저 가시를 제거해 주세요. 너무 아파요. 못 살겠어요. 이것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어요.”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뭐라고 응답을 주셨느냐면요, 9절에 보면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러십니다. 하나님에게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가시는 제거해 주시지 않고, 지금까지 네게 준 은혜가 충분하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히 은혜를 주셨어요.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라는 찬송이 있잖아요. 하나 하나 세어보면 우리가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가진 것이 많아요. 받은 복이 적다고 괴로울 때는 한번 기도하시면서 노트에다가 내가 받은 복을 기록해 보세요. 하나님께 감사해서 눈물이 날 거예요.
   꽃나무가 잘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는데,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줄 알고 길가에 뽐내고 서 있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햇빛을 주시고, 철에 맞게 적당히 비를 내려주시고, 도울자 나비를 보내주셔서 수정하게 하셔서 된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룬 것 같지만, 하나님이 다 복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받은 복에 기뻐하지 못하고, 못 받은 것, 그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먼저 받은 복에 기뻐해야 합니다. 받은 복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편안한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시를 새롭게 이해하라
   이제 가시를 새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첫째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고, 두 번째로는 뭐라고 하셨느냐면요, ‘내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요, 네가 약점이나, 가시를 가졌기에,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거예요. 약점이 하나님의 능력을 불렀다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가 강하고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도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교만해지겠어요. 처음에는 잘 나가겠지만, 그런 교만한 사람을 누가 상대나 해주겠어요? 누가 그런 사람을 사랑해 주겠어요? 그러니 그 사람이 행복하겠어요? 잠언 16:18절에는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파멸로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에게 약함이 있고 가시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게 됩니다. 자기의 약점을 알기에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니, 사랑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가시가 있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교만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의 하수인인 가시를 주셔서, 자기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교만하지 않게 하셨다는 거예요. 이것만으로도 가시는 은혜입니다.
   저는 저 충남 논산의 시골출신에다가 아버지가 농사꾼이었고, 8남매의 형제자매였는데요, 제가 대학 졸업할 때쯤까지는 시골출신이라는 말을 안 했어요. 제가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니, 그냥 대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뭐 하시냐고 하면 그냥 얼버무렸어요. 8남매란 말도 안 했어요. 그런 말 했다가는 참 교양 없는 가정이라고 다른 사람이 혹시 깔볼까봐요. 그러다 어느 날 깨닫게 되었어요. ‘너는 네 진짜 모습을 사랑하고, 네 진짜 모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너는 너를 왜 포장하고 교만해지려고 하느냐?’ 저는 그 이후에 시골출신이란 것과 아버지가 농사꾼이었다는 것을 당당히 밝힙니다. 왜냐? 이것이 저를 교만하지 않게 합니다. 겸손하게 만들어요.
   사도 바울은 출신도 귀족가문이요, 로마시민권이 있었고, 학문은 최고였고, 게다가 하나님이 주신 능력자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교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가 교만해서 패망하지 못하도록 육체의 가시를 주셨으니,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가시를 은혜로 받아들여요. 그는 가시를 새롭게 이해합니다. 이제 더 이상 가시는 가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주신 은혜예요.  

가시 때문에 우리는 능력을 받는다
   그리고 가시라는 것은 자기의 약한 부분이니까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고,내 능력보다 훨씬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커다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니까 가시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9절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가시를 볼 때 아프지만, 가시는 나에게 능력의 역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소설가 박경리씨라고 있었잖아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녀는 「토지」라는 소설로 한국 역사소설의 위대한 인물로 되었는데요, 그녀는 김행도라는 분과 결혼했습니다. 그 김행도씨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일본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옛날 전매청에 다녔어요. 그래서 그 가정은 아주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이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 남편이 전매청에 다니며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하게 되어, 월북하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그 가정은 파탄되었고, 그녀의 삶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박경리씨는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카톨릭 교인이었는데, 그때에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과 딸 두 남매를 제가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습니까? 길을 열어주세요.” 그랬더니 얼마 후 조그만 잡지사에서 글을 쓰는 길이 열렸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썼습니다. 잡지의 잡문이나 수필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소설을 쓰게 되었고, 그녀는 「토지」라는 위대한 수작(秀作)을 내게 됩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한국 현대의 최고의 소설가로 칭송을 받게 됩니다.
   제가 방송에 나온 그녀의 인터뷰도 보고 통영에 가서 그녀의 기념관도 가 봤는데, 그녀는 늘 동일하게 고백하길, 가난이 자기를 집념의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만약 자기가 글로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글을 안 썼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었다면 「토지」라는 한국근대화를 담고 있는 위대한 소설은 생겨나지 못했을 거란 말입니다. 역사책보다 그 시대를 더 잘 보여주는 소설이.
   남편이라는 가시와 가난이라는 가시가 그에게 능력을 준 것이지요. 그녀는 고백하길, ‘가난은 힘들었지만,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이러더라고요. 가시가 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가시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고, 또 가시에 눌려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시가 은혜라는 사람은 벌써 가시를 넘어서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내가 가시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 가시 때문에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이 가시를 빼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듣고는, 돌아서 생각해 보니, 자기의 가시가 은혜이고, 또 약함이 곧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10절 끝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은 쓰지 않으십니다. 아니 쓰지 못하십니다. 강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구하겠어요? 기도를 하겠어요? 하나님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게 되겠죠. 동행하시는 위대한 분 없이 혼자 수레를 끌고 헉헉거리며 인생의 언덕을 오르겠지요. 힘드니까, 옆에 있는 다른 사람 괴롭히며 분노하며....
    그러니까요, 나에게 있는 가시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을 기쁘게 안고 가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 모습을 긍정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의 부족을 채우려고 노력하며 자기 발전도 해야 하지만, 그것도 먼저 지금 자기를 사랑해야 가능합니다. 육체의 가시, 마음의 가시, 다 필요한 것이니,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괴로워하지 마시고 자책하지 마시고, 평안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가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가시에 눌려 살면 안 됩니다. 가시가 있지만, 그것을 이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일예배 때, 저를 통해 대언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새롭게 되어야 하고,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예배 중에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깨달음이 있어서 마음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깨달음과 새로움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셔야 내가 가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가시가 제대로 보여요. 원래대로 아주 작은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가시를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 목사님이라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의 대성서학자요 순교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몸에 치유되지 않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병을 내게서 물러가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물러가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기도했는데, 어느 날 그가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환상 가운데 그가 양쯔강에서 배를 타고 지나가는데, 큰 바윗돌이 자기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바윗돌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 워치만 니 목사님에게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워치만 니야, 이 바윗돌을 옮겨주랴, 강물이 넘쳐서 물이 바위를 덮어서 지나가게 하랴” 그는 “오, 주님, 강물이 넘쳐 지나가는 것이 더 편하옵니다.” 그때 강물이 넘치면서, 그가 잠에서 깼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렇다. 내 몸에 있는 가시를 빼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지나가는 것이 복된 것이구나.” 은혜의 강물이 내 안에서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생긴 가시가 있고, 또 살다가 생기는 가시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시만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 작은데도 크게 생각되며, 받은 은혜가 많은데도 감사가 별로 안 나오고 불행하게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시에 눌려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그 가시나 약점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룰 줄 알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빛나는 영성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전에 깨달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말씀에 아멘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까짓 가시를 넘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시도 은혜라고 고백하시는 그런 빛나는 보석같은 영성을 소유하셔서 언제나 행복하게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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