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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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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의 참 뜻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4:17)  /  조회 : 1,787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명성을 얻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920년대 미국 문학계를 풍미했던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이다. 그들은 무의미한 살육과 상처만 남긴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냉소적인 태도로 고발하면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고백했다. 요즘 세간에 자주 등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의 원조격 의미를 제공한 이들이기도 하다.


  ‘잃어버린∼’이란 표현은 이후 경제의 장기침체를 대변하는 용어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80년대 중남미·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개발 정체상태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렀다. 1991년 거품경제가 꺼지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경기침체가 계속되던 일본의 장기불황도 그렇게 불렸다.


  지난해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 ‘좌파 정권 10년, 잃어버린 10년’이란 평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이에 노 정부는 ‘선진국 도약의 10년’이라고 되받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집까지 내놨다. 여야가 대선을 앞두고 말장난 같은 공방을 벌이는 것 같아 보기에 딱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지난 10년 경제지표 변화를 감안할 때 ‘잃어버린 10년’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 나라가 부도직전까지 간 상황이었다. 반면 지금 우리 경제는 4∼5%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OECD회원국 중 아일랜드를 제외하곤 최고 수준이다.


  외환위기는 재빠르게 극복됐다. 한국의 지난 10년은 일본의 90년대나 중남미의 80년대와는 처지가 전혀 다르다. 그 사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주택가격이 폭등하는 등 문제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10년’이란 레테르를 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작금 남발되고 있는 ‘잃어버린 10년’은 결국 정치적 수사(修辭)인 셈이다. 사실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이란 정치적 수사에 낙점을 찍고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이명박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만큼 ‘잃어버린 10년’의 표징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유우익씨는 17일 “(한나라당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있을 이명박 당선인과 노무현 대통령의 회동을 앞둔 립서비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람직한 인식이다.


  여기에 남주홍 국무위원 후보자도 19일 새 정부 국무위원 워크숍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10년을 꼭 잃어버린 10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남 후보자가 비판자들에게 자신의 유연성을 내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이제 수사 차원의 ‘잃어버린 10년’은 의미를 잃은 것인지 모른다. 이미 정치적 성과를 얻어낸 마당에 굳이 억지 수사를 강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4·9 총선은 어차피 정권 유지·교체와는 다른 차원의 정치행사이겠고, 참여정부는 이번 주말만 지나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남은 것은 ‘잃어버린 10년’의 의미를 곱씹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수사 차원에서라도 ‘잃어버린 10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선 큰 목소리로 정치적 수사를 강조했던 한나라당은 10년 전 외환위기를 자초한 정권의 후예이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선택한 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소설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라고 여류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가 독자들에게 고백적 주문을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새 정부는 자기가 또 다른 ‘잃어버린 5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각별히 유념해야겠다.

 

2008년 2월 2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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