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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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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스트 대천덕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3:49)  /  조회 : 1,858

  젊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고모 집의 하녀 카츄사를 범한 네흐류도프. 그 일로 집에서 쫓겨나 사창가를 전전하다 살인누명을 쓰게 된 카츄사. 후일 각각 배심원과 죄인의 신분으로 재회하면서 이 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죄와 용서의 이야기.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뒤늦게 죄를 뉘우친 네흐류도프는 카츄사의 구명을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카츄사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이에 네흐류도프는 속죄를 위해 두 가지를 시도한다. 우선 시베리아로 유형 가는 카츄사를 뒤따르기로 하고, 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토지와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유형 길에 동행하는 것은 속죄를 위해 그렇다 치더라도 토지를 처분한 것은 의외였다. 톨스토이는 네흐류도프의 범죄가 토지소유자들의 오만함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던 것일까. 당시 톨스토이는 토지를 불로소득의 원천이라고 지적했던 미국의 사회사상가 헨리 조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성공회 교인이던 조지는 저서 ‘진보와 빈곤’(1879)에서 “사회가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토지사유제로 인해 불로소득이 지주에게 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기존의 노동세는 폐지하고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단일세(land only tax)를 제안했다. 이후 토지단일세는 그를 따르는 조지스트(Georgist) 경제학자들의 주된 주장이 되었다.


  말하자면 톨스토이도 조지스트였던 셈. 조지의 주장은 사유재산제와 대립되기 때문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진보사상가들 사이엔 면면히 이어졌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지난주 84세로 숨을 거둔 대천덕(戴天德) 성공회신부는 한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다.


  대신부는 젊었을 때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57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해오면서 개신교 수도원인 예수원을 세우고 기도와 노동을 중시하는 청빈의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60년대 이후 한국에 조지스트를 육성하고 토지단일세를 전파하는 데 힘써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해 지기 위해서는 ‘순수한 복음(Full Gospel)’과 ‘사회적 복음(Social Gospel)’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게 대신부의 지론이었다. 특히 사회적 복음의 실현은 불로소득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토지공개념에 대한 논의만 있었을 뿐이다. 여전히 부동산투기는 기승이고 부동산의 소유가 부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 와중에 빈부격차와 사회적 위화감은 점점 더 격심해지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지스트의 주장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평생토록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꿈꾸며 선한 가르침을 주었던 고인이 눈을 감던 바로 그 주간에도 정부는 또다시 부동산투기대책을 내놓았으니 하는 말이다.

2002년 5월 30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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