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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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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 탈북자들에게도 봄을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3:51)  /  조회 : 1,700

  옌지(延吉)를 출발한 기차는 한 시간만에 투먼(圖們)에 도착했다. 3월 말이라 조금 쌀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봄기운이 완연하다.


  투먼은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중 유일하게 철도와 도로가 북한과 연결된 1급 해관(海關)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경제사정 악화로 교역량이 많이 줄어 오가는 차량이 별로 없다.


  어스름해질 무렵, 탈북한 후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산다는 여성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투먼 시내의 조선족 동포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대신 30대 중반인 그녀의 조선족 남편과 고희를 넘긴 시어머니 그리고 생후 6개월 된 어린 딸이 반긴다.


  남편은, 지난해 말 시작된 북한 특무와 중국 공안이 공동으로 벌린 중국 내 탈북자 색출 100일 작전은 3월 15일로 끝났지만 방문검색이 여전해 부인을 피신시켰다며 말문을 연다. 2000년에 탈북한 부인은 이미 한 차례 붙들려 송환됐다가 재차 탈북을 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인터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되레 미안해한다. 지난 100여일 동안 3500여명의 탈북자들이 검거돼 북한으로 송환됐다는데 긴장상황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그는 본래 농사일을 했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이웃과 내왕이 적은 투먼으로 옮겨와 산다고 했다. 일자리도 없어 형제들이 도와주는 쌀로 근근히 견딘다는 그의 살림엔 가난과 공포와 울분이 덕지덕지 끼어있다. 엄마 젖을 먹지 못하게 된 아이의 우유 값도 감당하기 어려운 눈치다.


  부인과 나이 차가 10살이나 된다기에 옌볜에도 농촌총각 문제가 심각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면서 탈북 여성과 조선족 남성의 결혼을 중국당국이 제발 눈감아주면 좋겠다는 열변을 토한다. 이어 그는 “중국의 혁명은 옌볜 혼자서만 하는 것 같다”며 이 지역에서 유독 강화된 중국당국의 탈북자 체포작전을 비난한다.


  옹알거리기 시작한 손녀를 어르던 그의 어머니도 “이젠 악이 납니다”며 거들고 나선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사정이 어려워 많은 조선족들이 국경 너머 북한을 찾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북한여성들과 결혼하여 정착해 살았는데, 같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탈북자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다. 굶주림을 피해 온 탈북자들을 같은 동포로서 인정으로 거둬주고 그 과정에서 남녀가 결혼해 애 낳고 사는 게 뭐 그리 잘못됐느냐고 울부짖는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적지 않아 조선족 마을마다 아픈 사연들이 넘친다. 당국이 탈북자를 돕는 사람들에게 2000~5000위안(30만~75만원)의 벌금을 물리기 때문에 어떤 집은 탈북해 온 북한 며느리를 아예 눈물을 머금고 되돌려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들려서 보내면 다행이고... 근로자 월급이 500위안 정도이니 벌금은 대단히 큰 부담이다. 게다가 탈북자나 그들을 돕는 자를 신고한 사람에게 100~200위안씩 포상도 하기 때문에 같은 마을 사람들간 불신도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사정은 옌지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경우도 비슷했다. 한 때 옌볜 지역에만 수만 명에 이르렀던 탈북자들은 지난 집중 검거작전으로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어라도 좀 구사할 수 있어 눈치껏 중국사회에 정착해 있거나 조선족 친척들이 있어 그들에게 보호를 받는 사람들만이 겨우 남아있는 정도다. 그러나 탈북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옌볜에 어렵게 남은 탈북자들은 날로 죄어오는 중국당국의 호적조사로 늘 두려움에 떨고 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살던 고향을 등진 이들이 체포돼 송환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특히 조선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탈북 여성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중국정부가 인권적 차원에서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가족의 생이별을 국가가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려면 북한도 우선 바뀌어야 할 텐데...


  인천공항으로 오는 직통편이 없어 들른 센양(瀋陽)에서는 새벽부터 때늦은 함박눈이 내렸다. 옌볜의 탈북자들에게 봄은 아직 이른 것일까.

2003년 4월 3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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