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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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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가 통일꾼으로 나서야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3:28)  /  조회 : 1,530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거야/기여코 가고야 말거야 이건/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이건 진담이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그야 하는 수 없지/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문익환 ‘잠꼬대 아닌 잠꼬대’)


  지난 89년 3월 서슬 퍼렇던 국가보안법을 무시하면서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고 문익환목사는 그 해 첫새벽에 그렇게 절규했다. 죽음을 넘어 통일을 꿈꾸었던 노(老)시인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있지나 않을지. 감회의 눈물이 앞을 가려 그가 묻힌 모란공원묘지는 때아닌 이슬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문목사가 온몸을 던지며 감행했던 그 평양행이 이번엔 김대중대통령 차례가 됐다. 그것도 대규모의 수행원을 이끌고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지난 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남북정상들이 함께 마주 보며 손을 잡고 박수를 칠 때 온 국민은 역동하는 민족의 생명력을 보았다. 살륙과 대립의 역사가 화해와 협력으로 변하는 현장을 보며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잃었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실감나는 순간이다. 변하지 않을 것으로만 보이던 북한체제도 남한을 향해 러브콜을 날리고 급기야 협력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만나서 흉금을 털어놓으면 분단체제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을…. 반목과 대립은 왜 그리도 길고 길었는지.


  다만 지금 우리의 감동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은 그간 분단을 저주하며 통일조국을 꿈꾸었던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이, 고통 중에도 굽히지 않았던 그들의 곧은 의지가 넋으로 남아 끊임없이 이 땅을 사로잡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바로 그 연장선에 한반도 냉전체제 극복을 목표로 삼아 꾸준하게 추진됐던 현정부의 대북 햇볕정책도 있었다. 북한에서도 90년대 들어 북한사회주의의 제도피로현상이 역력히 드러나기 시작한 데다가 거푸 반복된 자연재해는 결과적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지만 북한의 변화는 줄곧 남한을 배제한 채 추진될 뿐이었다.


  물론 북한당국의 딜레마를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예컨대 북한의 대외개방정책은 극단적인 산업붕괴에 직면하고 있는 북한경제에 도움이 되고 피로감 가득한 나라를 혁신하는 데 활력소가 되겠지만, 동시에 변화의 물결 속에서 혹 지배체제 전복위협이 숨어 들어올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남한의 햇볕정책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바로 그 반증이다.


  현단계에서는 남북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의 엄청난 진전이지만 보다 중요한 의의는 아무래도 남북한문제를 당사자들이 직접 풀어보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축으로 일관됐던 북한의 대외정책이 적어도 ‘통남통미(通南通美)’식으로 바뀌고 있음은 한반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임하게 되었다는 신호이다.


  사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주변 열강들에게 한반도문제가 바로 남북한의 문제라는 평범한 진실을 각인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식민지로 지배를 당할 때도 그렇고 분단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그저 식민통치체제의 아픔이, 분단시대의 고통만이 지루하게 요구돼왔다.


  통일꾼 문목사가 기를 쓰고 평양엘 가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분단을 거부하기 위해서’라고 문목사는 당시 자신의 방북배경을 이야기했다. 아픔에서 벗어나자고, 고통의 차고를 끊어버리자고 외치는 한편 분단시대를 사는 백성의 존재이유가 그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느냐며 그는 노래했다. 그러나 분단극복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반세기 넘게 쌓인 묵은 한을 어찌 단번에 씻을 수가 있을 것인가.


  초조해 하지는 말자. 변화의 바람은 분명 불고 있으니 애태워 하지는 말자. 조금씩, 그러나 치밀하게 통일을 준비해가자. 이산가족문제, 경제협력, 상호평화공존체제 실현 등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 다음이 바로 통일이 아니겠는가.


  이젠 우리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 통일이 남의 일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먼저 통일꾼이 돼야 하지 않겠나. 오늘의 감동이 무수한 통일꾼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그리고 평양으로 가자, 서울로 오라 하자.

 

 

2000년 6월 15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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