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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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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총과 영성 - 구원과 영성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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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4.29 (16:18)  /  조회 : 1,199

제31차 그리스도인의 세상살림/2006년 1월 22일-제직수련회를 겸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영성 - 구원과 영성 다시 보기

 

조용래 장로

A.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

1. 구원의 길

어거스틴 : 펠라기우스파/ 도나투스파 뛰어넘다. 현세 사회에 부여된 구원과 은총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로서 교회, 가톨릭 조직의 보편적 유일성을 구축하다.

․ 펠라기우스(354-418)․Pelagianism. 구원에 이르는 길은 개개인의 도덕적 책임에 입각한 영적인 각성으로 가능한 것 아닌가, 선행(실천)이야말로 구원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경시함 ⇔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구원에 이름

․ 도나투스(313-347)․Donatism. 교회의 성직은 신앙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순수, 고결해야 한다. 이것을 성직자의 필수조건으로 주장(人效論). 한 번 기교(棄敎)한 성직자는 회심해도 성직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 棄敎者에 대한 엄격주의와 관용주의. 콘스탄틴대제, 314년 아르르 公會議에서 엄격파를 이단으로 결론내림(예: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대한 건) ⇔ “사람은 불결해도, 구속의 행위는 순결하다”(事效論=은총의 시설로서의 교회)는 어거스틴의 주장.

- 事效論과 人效論. →극단적인 事效論은 “성직자이기만 하면… 축첩이 됐든 품행이 나쁘든 성령에 의해 성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 없다”

- 이후 논쟁 끊이지 않음(중세 가톨릭교회 내외부에서, 이후 지금까지)

 

2. 종교개혁 시대 이전의 종교개혁

도나투스派

와르도派 : 리용의 거상 와르도(1140?-1217), 통속어역 성서를 생활화함. 남프랑스, 오스트리아, 북 이탈리아에 확장. 1184년 베로나 공회의에서 ‘리용의 빈자’라는 이름으로 이단선고. 이후 전 유럽에 급격히 퍼짐. 회심(回心), 산상설교 중시, 금식, 형식주의 배격, 성서중심주의.→ 일반신도 성서 못 읽도록 결정(1229, 투르즈회의)

존 위클리프(1328?-1384). 1355년 영주, 1361년 필링함의 신부. 1382년 추방→롤라드派(Lollards=기도를 중언부언하는 이들, 蘭)로 이어짐

- 교회에 부여된 권위는 세속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적 문제들에 대해서만(오캄)

- 성직자들에 대한 국가의 세금징수 옹호, 국가의 역할 강조(교회 타락의 교정자)

- 성서 최우선 권위론. 국민들의 언어로 성경 만들어야→최초의 영어번역 출현.

- 예정론 : “어느 누구도 선택받은 자들 가운데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든 사람은 그런 확신 속에서 행동해야만 한다” 이는 성직자들이라도, 아니 교황이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주장. 경건과 순종의 자기 확인 노력을 전제로 함(→캘빈).

- 人效論에 입각(경건치 않은 사제들에 대한 문제- 참가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성례적 현존은 사제의 권면이 아니라 참여자의 마음에 달렸다).

얀 후스(1380?-1415). 1400년부터 프라하대학 총장, 설교자(설교권, 이종배찬 금지, 신분차별 금지, 성직자의 위상, 후일 1433년 ‘프라하 4개조’로 인정됨). 1414년 파문, 1415년 화형→후스전쟁. 反교황, 反독일 운동으로 번짐.

- 성서 중심, 기존 교회 비판. 체코어로 설교, 면죄부 비판.

 

3. 루터의 의인론(義認論)

․1517년 95개조.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음. 의롭다 칭함을 받으면...

 

4. 캘빈의 예정론/끊임없는 자기반성․자기확신

․ 1536년 5월 25일 제네바의 시민총회, “앞으로는 복음서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활하고 모든 가톨릭적 악습을 폐지한다.” 쥬네브공화국 250년의 시작.

․ 반복적 자기성찰을 통한 구원의 확신.

․ 캘빈 시대의 제네바 : “캘빈의 사상은, 하나님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동역자로 선택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덕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성서에서 인간의 올바른 행위와 적절한 예배의 지침을 부여받았다고 확신하는 용감한 사람들을 훈련했다. 많은 나라에서 캘빈의 정신적 후계자들은 공통의 성격을 나타냈다.”

 

5. ‘제4의 종교개혁(Forth Reformation)’ 또는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 고전적 개혁운동(루터, 캘빈, Anglican)과 급진적 개혁운동

- 재세례파의 특징 : 1)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으로써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 2)철저한 회개와 재생을 통한 소수의 자발적인 결사, 3)무저항적 절대 평화주의, 4)유아세례의 반대, 5)교회와 국가의 분리, 6)맹세의 거부 등.

․ 민중적 성령주의자 Thomas Muentzer(1490?-1525)

․ 스위스 형제단/남중부 독일의 재세례파/네덜란드의 재세례파(Mennonites : 순결한 교회관. 장로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 수립. 신앙생활에 대한 엄격한 통제)

․ Muenster의 천년왕국운동(1534년 2월~1535년 6월)

․ 종교개혁기의 영성운동 : 사회참여, 강한 현실 인식.

 

6. 독일 경건주의(Pietismus)

․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 이후의 경건성의 위기

․ 삶 가운데서 추구할 수 있는 신앙체험 갈급의 시대(17세기 초)=신앙정체성의 위기

․ 교회 내 작은 교회운동(ecclesiola in ecclesia). 교리보다 신앙의 실천․경건 실천.

․ J. Arndt(1555∼1621), Ph. J. Spener(1635∼1705), A. H. Francke(1663∼1727).

B. 聖과 俗의 구분 과연 옳은가 = 하나님의 구원과 영성 추구의 조화를 위하여

7.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구분

교황 겔라시우스 1세(재위 492-496)의 두 개의 검 이론 : 황제가 지배하는 속권과 교황이 대표하는 교권.

․ 이 문제로 등장

․ 교회의 안과 밖(Text와 Context)

․ 텍스트에서 컨텍스트로? 컨텍스트에서 텍스트로?

 

8. 오늘날 한국교회 영성 추구의 문제점

․ 참여/실천 없는 영성, 기복 영성

․ 강요된 구원과 개인/개교회적 주의주장에 매몰된 소극적 영성

․ 하나님의 구원과 크리스챤들의 적극적 영성이 상호교감을 이루는 것=신앙생활.

 

 

카톨릭

루터파

스위스형제단

재세례파

중남부유럽

재세례파

뮌쪄

뮌스터

권위

선한행위

카톨릭 의식

성서의 권위 신앙의 권위

재생 전제로 한 세례

좌동

외부적인 영적 체험

재생

영적체험

유아세례

O

O

×

×

×

×

성인세례

×

×

O

O

O(외적표식 별 의미 없음)

O

성서 중시

O(성직자)

O

O(신약중심)

O(신약중심)

O(구약중심)

외적인 권위

O(구약중심)

성령 중시

×

×

×

O

O

내적인 권위

O

무력사용

×

×

×

×

O

O

현실정치개입

O(추종)

O(추종)

×

×

O(주도)

O(주도)

현재

O

O

×

×

<표 1> 루터에서 재세례파까지

 

 

<참고> 국민일보 칼럼 ‘한마당’ 04년 6월 2일자

政敎 분리

 

하나님은 교황에게 두 개의 검을 주었다. 영적 영역의 검과 세속사회의 검이다. 교황은 세속 군주에게 세속사회를 다스릴 수 있는 검을 맡겼지만 세속 군주가 엉뚱한 목적으로 검을 사용하면 언제든지 그 검을 빼앗을 수 있다.

중세 교황의 권위를 주장하는 ‘두 개의 검 이론(two swords theory)’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종교개혁과 함께 사실상 폐기된다. 교황의 절대적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유럽의 세속 군주들은 당시 교황의 권위를 비판하는 프로테스탄트와 연합해 교황의 간섭을 물리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세속군주들은 프로테스탄트를 새로운 국가통합의 도구로 활용하려고 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바르트부르크성(城)에 숨겨주면서 종교개혁 운동을 후원했던 작센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 3세도 그 중 하나다.

이후 유럽은 신․구교를 각각 옹호하는 세속 군주 간 대립이 격화하면서 엄청난 살육의 역사를 겪는다. 신앙의 광기, 바로 16∼17세기의 종교전쟁이다. 뒤이어 18세기에 등장한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종교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고 종교적 관용을 강조한다.

세속 군주들 역시 종교적 통합이 국가통합의 원리가 되지 못하며 종교 갈등이 오히려 국가질서를 해체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결과 성과 속의 구분, 이른바 국가의 정교(政敎)분리 원칙이 탄생했다. 이렇듯 정교분리는 근대국가 탄생과정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 헌법에 명기돼 있다.

엊그제 일본 자민당은 평화헌법 개정안에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겠다고 밝혔다. 총리․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 소지를 아예 없애려는 목적이다. 정교분리 원칙은 서유럽에서 벌어진 수세기에 걸친 살육과 죽음의 역사를 넘어 어렵사리 인류가 쟁취한 것임에도 일본은 되레 역사를 거슬러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하겠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일본이 전근대 국가로 퇴보하느냐 마느냐는 관심 밖이다. 다만 그 퇴보가 과거 천황을 정점으로 한 국가 통치시스템과 국가신도의 교묘한 결합을 방조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천황이 국가신도의 살아있는 최고신(現人神․아라히토가미)으로 군림하면서, 자국 백성은 물론 인접국 백성에까지 폭력적으로 국가신도를 강요하고 통치를 달게 수용하라는 식의 정교일치의 역사가 괴멸된 지 60년도 채 안 되었거늘…. 자민당의 퇴행성 역사의식이 두렵기만 하다./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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