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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자본주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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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4.29 (15:28)  /  조회 : 1,261

 

기독교와 자본주의②

―종속적 소비에서 창조적 소비로―

 

1996년 12월 1일(오후예배)

(디모데전서 6,17-20)

 

 

1. 소비자는 자주적인가?

공급자 위주의 시대에서 소비자 위주의 시대로

 

오늘날 한국경제는 ‘공급자 우위의 경제단계’를 벗어나 ‘소비자 우위의 경제단계’에 도달해 있어서 소비문제는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과거 경제발전 초기의 ‘공급자 우위의 경제단계’에서는 물건이 귀했기 때문에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그것의 판매는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은 물건이 흔하고 넘쳐흘러서 특색있고 모양좋은 것을 만들기 전에는 소비자를 현혹시키지 못한다. 즉 소비자의 선택과 입맛이 그만큼 까다로워진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소비자 우위의 경제’가 문자 그대로 소비자가 주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 종속적(모방적) 소비자의 탄생

오히려 소비자는 공급자(생산자)의 판매전략에 따라 강제구매의 표적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행이다. 또 소비자를 성별, 연령별, 직업별로 분할하여 각개공략한다. 오늘날 X세대, 미시족,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s)족 등등의 개념은 철저하게 마케팅전략의 일환이 되어있다. 소비자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특정그룹에 속하게 되고 그들만의 유행에 포위되어 그것을 추종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바로 ‘모방적(종속적) 소비자’의 탄생이다.

또한 이 시대에는 기능은 동일하지만 디자인과 재료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상품이 등장하여 소비자를 유혹한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문화라는 집단적 주거형태는 단지 내에서 경쟁적 소비를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새상품의 집단적 소비를 강요한다. 역시 ‘모방적 소비’의 전형이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들어 한 사람이 모피코트를 입으면 나머지 모두는 경쟁적으로 그 상품을 구입하려고 한다.

 

3. 강요된 소비

‘종속적(모방적) 소비자’의 탄생을 재촉하는 갖가지 마케텅전략

1)오감을 자극하는 판매기법

①백화점의 입구에 빵집을 두어 구수한 냄새(혹은 원두커피 향)을 두어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이끌리도록 함

②생선코너에 회를 뜨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도록 유도하고 대형수족관을 비치하고 신선도를 강조

③화려한 조명 속에서 자연광을 차단하고 편안하고 장시간 쇼핑을 하도록 조장

④과일가게 등에서는 한꺼번에 묶어 팔면서도 가격은 100g당 가격을 표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싼 느낌을 줌(여기에 저울을 비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⑤눈높이에 마진 좋은 상품을 배치(눈높이 상하 30°정도)

2)관련상품 구매유도기법

예 : 커피와 프림, 원두커피와 그 부대장치, 오이와 고추 등등

3)연계상품 구매유도기법

한가지 상품을 싸게 팔도록 하여 주위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함

4)시간차 공격기법

세일상품을 시간제로 한정해 두고 시간이 지났을 때에 온 소비자가

헛걸음 하지 않겠다는 심리를 이용함.

5)창고용 할인매장(바겐세일의 실체)

①가격파괴로 인해 생각하지 않았던 제품을 사게 됨(싸다는 이유로 필요량 이상의 구매를 야기시키고 충동구매를 하게 함, 특히 대량구매했을 때 과연 이 상품들을 끝까지 후회없이 잘 소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②이것은 세일 때 흔히 하는 방법인데 특정 상품을 싸게 팔지만 다른 상품이 똑같이 싸지 않음에도 구매를 하게 된다는 사실.

③그와 마찬가지로 상품을 싸게 구입했을 때 소비자는 심리적 만족감과 보상심리(승리감)가 다른 상품을 구매해도 좋다는 방향으로 전환되게 됨(결국은 예상지출을 상회하고 만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과소비’개념이 갖는 허상도 존재한다. ‘과소비 타파’가 문자 그대로라면 위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실제로 이 사회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경제불황의 짐을 국민대중에게 전가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 조작혐의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4. 종속적(모방적) 소비에서 창조적 소비로

왜 우리는 이러한 모방적 소비에 대해 무방비한 것인가? 우리의 신앙이 수단이 되고 정작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지배에 대한 갈급과 구원을 얻기 위한 반복적인 자기성찰은 뒷전으로 밀리고 물적 축복이 전면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원을 얻었는가 하는 불안보다는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전도된 우리 자신의 삶의 목표를 재수정해야 한다. 소비생활에 있어서 종속성을 탈피하고 실질적 필요에 따른 구매, 즉 ‘창조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유일자 하나님에 속한 것이 가장 존귀한 것이며 행복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상품소비에 의한 행복추구는 부차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적 소비’는 하나님의 지배를 최상의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우리들의 증거로서 택해야 할 당연한 선택이다.

한편 현재와 장래에 모방적 소비가 계속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불안은 결국 사회의 부패구조를 낳는다. 즉 이러한 불안은 모방적 소비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심화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풍요로운 경제(소비)생활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와 공공의 이익에 무관심한 공격적 태도를 조장시켜서 비정상적인 부의 축적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불안과 공격적인 경제생활은 그 정도문제를 무시한다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속성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 속성 하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도 적극적으로 ‘창조적 소비’를 관철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앞서 자본주의는 직접적인 인관관계가 아니라 상품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그것는 마치 정상적인 성관계를 회피하면서 이성이 착용하는 물건들에 집착하는 성도착자(Fetishist)와 같은 변태적 모습을 취한다. 사실 이러한 변태적 관계 속에서 정상적으로 대처하기란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개인적인 대응은 강력한 자본주의의 물살에 휩쓸려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물신주의라고 하는 변태체제 속에서 정상적인 인관관계를 유지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정이라는 공동체와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라고 하는 변태적 관계는 점점 비대해 져서 가족관계의 붕괴를 조장시키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 사회에 폐륜적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무조건적인 인간관계로 놓여있어야 할 가족관계가 재산권이나 이권을 다투는 물질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가족관계는 대가 지불없는 무상의 경제관계이며, 대가를 지불할 때에만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관계와는 달리 항구적인 관계이다. 또한 상품을 교환하는 관계도 아니기 때문에 경쟁적 소비나 모방적 소비가 이루지는 곳도 아니다. 따라서 이 가정을 축으로 하여 자본주의의 강한 파도에 밀려가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 역시 상품을 매개로 한 관계가 아니므로 가정과 동일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기독교윤리의 원천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은 더욱 강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앞서 제기한대로 교회가 경쟁적 상품구매를 부추기는 현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수단에서 회복되는 것을 전제할 때 가능한 일이다. 총인구의 1/4이상을 점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참된 역할을 수행할 때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도덕성회복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강화는 부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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