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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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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사람들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4:02)  /  조회 : 1,560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오열하고 있다. 벌겋게 상기된 눈자위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도 없이 손등으로 훔치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지난 16일자 외신사진 중 한 컷이다. 현재 중남미를 순방 중인 고이즈미 총리가 브라질 상파울로의 이민사박물관에서 일본교민들에게 연설하는 도중 고난의 교민사를 회상하면서 흘린 눈물이다. 가난 때문에 팔려오다시피 이민을 택했던 선조들의 고통을 애통해하는 총리.


  충분히 감동적이다. 과거 침략사의 주인공 일본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제 때 그들은 수많은 한국인들을 일본 남양주 사할린 등으로 끌고 와 노역을 강요했지만 지금까지 배상은커녕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성도 사과도 없으니.


  최근 한국에 호소 차 온 재일 동포 ‘우토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감동은커녕 그들의 이중성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우토로는 일본 교토의 우지시(市) 이세타쵸에 속한 6000여 평 정도의 재일 동포 집단 주거지역. 현재 70여 세대 300여명의 재일 한국인·조선인이 산다.


  우토로는 일제 말기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 1300여명의 간이 식당이 있던 곳으로, 이후 점차 한국인 집단취락지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자 이들은 일자리도 오갈 데도 없는 처지가 됐다. 땅주인도 당초 국영기업에서 패전 직후 ‘닛산차체’로, 1987년엔 ‘서일본식산’이란 부동산회사로 바뀐다.


  어려움은 87년부터 증폭됐다. 서일본식산은 소유권을 내세워 우토로 사람들의 퇴거를 요청했고, 이에 반발한 주민들은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십여 년을 끌어온 소송투쟁은 99년 6월 이후 최고재판소의 상고 기각으로 주민들의 패배로 끝났다. 우토로 사람들은 88년까지 닛산차체가 토지불법점거를 이유로 수도설치를 금지해 오랫동안 식수 문제로 고생해왔으나 이젠 아예 퇴거위기에 놓인 것이다.


  역사의 현장 우토로는 한갓 점유권과 소유권의 분쟁 현장으로 전락했다. 60여 년 이어온 점유권의 뿌리가 무엇보다 일제의 강제 노역에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우토로 사람들에 대한 퇴거 강요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교토부나 일본정부는 나 몰라라 일색이다.


  자국민의 고통에만 눈물 뿌리지 말고 자국 내 이웃의 고통에도 관심을 가져야 큰 나라다. 제 백성 귀한 줄만 알았지, 자신들이 억압해온 상대의 괴로움엔 둔감한 일본, 언제까지 천박하게 굴 것인가.


 

2000년 5월 18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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