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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희년(禧年·The Jubilee)은 50년만에 잃었던 땅을 되찾고 노예가 풀려나는 은혜의 해입니다(레위기 25장).
안식·해방·복권의 희년은 시공을 뛰어넘어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희년 칼럼잠실희년교회에 오신걸 환경합니다.

韓·日 풀뿌리 연대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4:09)  /  조회 : 1,568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굳이 논어의 공자 말씀을 끌어오지 않아도 마음이 맞는 이로부터 온 소식 또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요즘처럼 나른한 봄날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뜻밖의 소포를 받았다. 올 2월 일본어로 번역 출간된 ‘철조망에 핀 넝쿨장미’(원제 ‘가시철조망 위의 넝쿨장미’, 2004)란 책과 함께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 보낸 이는 공동번역자 고이케 게이코씨. 20년 전 일본 유학시절 가르쳤던 한국어강좌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건 물론 듣지도 쓰지도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한 손에 사전을 들고 시간을 들여 한글을 읽는 재미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그런 내가 번역작업에 참가했습니다. 우선 제게 한글 읽기의 씨를 뿌려준 분께 마음 깊이 감사하며 이 책을 보냅니다.”


  쑥스러운 메시지였다. 한 게 뭐 있다고 이렇게까지…. 돌이켜보면 그때의 한국어강좌는 가난한 유학생을 도와주기 위한 빌미였고 배우는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과 반인륜적 지배를 반성하고 진심어린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일관계의 비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도하며 풀뿌리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예컨대 한국에 진출해 있던 일본기업 스미다전기가 1989년 위장 폐업해 철수한 후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도쿄 본사까지 찾아가 원정데모를 벌였을 때 그들을 지원했던 상황은 지금도 생생하다.


  보내온 책은 주로 1970∼80년대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8명의 여성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이케씨는 한글을 계속 읽어오는 한편 풀뿌리 시민운동에도 열심이었다. 올해로 67세를 맞은 그녀는 당시나 지금이나 많은 것들을 몸소 가르쳐준다. 우리는 국경과 나이를 뛰어넘어 함께 배워가는 벗(朋)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일본문제에 관심을 가져오면서 일본 보수정치가들의 터무니없는 망언이 나올 때마다 일본에 대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고이케씨 같은 이들을 보면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된다. 지금도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있으나 한·일 풀뿌리 연대는 건재하다. 희망을 만나는 봄날은 나른하기는커녕 활기가 넘친다.

 

2007년 4월 13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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