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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희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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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무딘 듯 날선 칼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06.02 (14:16)  /  조회 : 1,615

  혼란스러웠다. 지난달 19일부터 십여 일이나 지나 새해를 맞았지만 혼란은 가시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컨대 아직 그 원인조차 잘 모르겠다.


  대통령선거일. 방송사의 출구조사를 지켜보다 자연스럽게 통음으로 이어졌다. 새 정부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儀式)은 분명 아니었다. 참여정부의 참패를 애통하는 자리는 더욱 아니었다. 굳이 따진다면 민심 때문이라고나 할까. 무딘 듯 보이면서도 때론 날선 검처럼 세상을 휘젓는 힘, 참으로 두려운 상대다.


  위장 취업·전입의 경력이라도 좋다. 주가조작사건의 주모자인 국제사기꾼에 놀아난 인사라도 상관없다. 경제를 살려준다고 하질 않는가. 그렇게 MB(이명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준 것은 무딘 민심이었을까. 아니 실정(失政)이란 비판과 함께 참여정부에 차갑게 등을 돌렸던 날선 검 같은 민심은 또 어떤가. 무디면서도 날선 민심을 두고 구(舊)여권의 한 인사는 선거유세 중 ‘국민 노망론’을 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따져보면 시종 실정만은 아니었다. 권위주의, 돈 드는 선거, 정경유착 등 참여정부의 노력으로 떼밀려난 낡은 폐습이 한둘이 아니다. 또 균형발전, 자주외교 등은 추진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지만 국민의 인식 전환에는 나름대로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경제성과도 최악으로 보기는 어렵다. 잠재성장률 수준의 경제성장을 비롯해, 물가 환율 주가 등 거시경제지표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실정으로 요약되는 까닭은 참여정부가 민심읽기에 실패한 게 아닐까 싶다.


  마치 계몽주의 군주가 그랬던 것처럼 참여정부는 계획된 의제를 일방적으로 내세우기에 바빴다. 제대로 된 설명이나 합의를 유도하려는 노력보다 당위명제를 강조하면서 ‘나를 따르라’식 주장을 펴기에 열심이었다. 눈높이를 맞춰 민심을 이해하고 아픔에 동참하기보다 국민을 끌고 가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경제양극화 심화, 일자리 부족, 투자부진 등도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와 일부 관련이 있지만 주로는 세계경제 동향과 경제구조 변화에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이다. 하지만 소통을 거부당한 민심은 제 주장만 펴온 참여정부에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겼다. 결과는 계몽군주의 몰락과 다르지 않았다.


  요즘 MB측은 새 정부 출항준비에 여념이 없다. 일을 앞세우는 CEO출신 MB의 실용주의 노선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하지만 새 정부 역시 민심 앞에서는 겨우 5년을 넘겨받은 대의민주주의의 한 축에 불과하다.


  당선인의 화려한 공약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연 7% 성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단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꾀하면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다. 이는 경기회복은커녕 또 하나의 난제를 끌어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당장 2∼3%포인트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 살리기의 수혜자가 과연 누구냐는 점도 거론된다. 민심은 저마다 수혜자가 자신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순서로 보면 기업이 우선이다. ‘규제 완화→기업투자활성화→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경제 살리기 시나리오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규제 완화로 기업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만 기업투자와 비례해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닌가. MB측은 경쟁을 우선시하되 경쟁에서 밀려난 경제주체들을 정부가 감싸 안겠다고 했지만 그 비용을 어찌 조달할지는 확실치 않다.


  한껏 부풀려진 민심의 기대에 무작정 부응하자면 무리가 따르기 십상이고 거꾸로 기대를 무시하면 민심 이반(離反)은 시간문제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 밝히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무엇보다 앞세워야 한다.


  참여정부가 반면교사다. 무릇 민심은 무딘 듯 날선 칼과 같으니.

 

2008년 1월 1일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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